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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 정부와 정치권은 ‘수신료 분리징수’가 아니라 ‘건강한 공론장의 재건’에 나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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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와 정치권은 ‘수신료 분리징수’가 아니라 ‘건강한 공론장의 재건’에 나서야 한다

 

 

  KBS 김의철 사장이 어제(8일) 기자회견을 열고 “수신료 분리징수가 철회되면 자리에서 물러나겠다”고 밝혔다. 지난 5일 대통령실이 방송통신위원회와 산업통상자원부에 수신료 분리징수를 위한 법안마련을 권고한 것에 대한 응답으로, 사장의 직을 걸고 ‘분리징수 철회’를 요구한 것이다.


  우리는 방송을 살리겠다는 김 사장의 충정을 이해하지만, ‘조건부 사퇴’는 결과적으로 권부의 압력에 굴복한 셈으로 적절한 해결책이 아니며 결코 수용되어서는 안 된다고 판단한다. 윤석열 정부는 지난해 6월 KBS 내 소수노조가 청구한 감사원 감사에 대해 세 차례나 감사 기간을 연장하면서 감사를 벌였으나 아무런 혐의점이 나오지 않자 급기야 ‘수신료 분리징수’라는 치졸한 방법을 동원한 것이다. 


  대통령실은 수신료 징수방식을 바꾸려는 배경에 대해, 국민제안 홈페이지의 ‘국민참여 토론’에 참여한 5만 8,000여 명 중 96%가 수신료 징수방식 개선에 찬성했다는 것을 근거로 들고 있다. 그러나 수신료 징수방식을 아무런 토론 없이 한 차례의 여론조사로 결정하는 것은 소가 웃을 일이다. 조사 자체도 표본추출도 없고 한 사람이 수차례 중복투표가 가능한 비과학적 조사라는 점에서 신뢰성을 인정할 수 없다.


  수신료 징수방식을 현재의 통합징수에서 분리징수로 바꾸려면 두 가지 사항을 따져보아야 할 것이다. 하나는 현재의 통합징수 방식이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위헌·불법적 요소가 있는가인데, 이에 대해서는 이미 헌법재판소가 1999년과 2008년 두 차례에 걸쳐 합헌 판정을 내렸다. 수신료는 시청의 대가가 아니라 공영방송의 공익을 위해 부과되는 특별부담금이라는 것이 헌법재판소의 유권해석이다. 2016년 대법원도 현재의 통합징수에 대해 적법 판정을 내려 헌법이나 법률에 전혀 저촉되지 않음이 입증되었다. 


  또 다른 하나는 분리징수가 통합징수보다 방송 운영이나 시청자에게 실질적 이익이 되는가를 따져보아야 할 것이다. 정작 수신료로 방송을 운영하는 주체인 KBS는 분리징수가 통합징수에 비해 징수율이 6분의 1로 떨어져 공영방송 재정에 엄청난 타격을 초래할 뿐이라며 결사반대를 외치고 있다. 더구나 이로 인해 방송의 질이 떨어져 이익은커녕 국민과 시청자에게 커다란 폐해를 가져올 것이 불 보듯 하다.


  그동안 수신료 문제가 여야 두 정치 세력의 정치적 쟁점이 되어왔던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국민이나 시청자의 입장은 안중에도 없었고, 일부의 편향된 주장이 전체의 주장인 것처럼 오도되었다. 어느 쪽이 먼저냐를 따질 것도 없이 집권당이 수신료 인상을 주장하면 야당은 ‘묻지마 반대’를 해왔으며, 여야가 교체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입장이 바뀌었던 과거 역사를 국민과 시청자는 다 기억하고 있다.


  1981년 컬러TV를 도입하면서 수신료가 500원에서 2500원으로 인상된 후, 방송은 고화질TV, 초고화질TV, 다중채널서비스 등으로 발전해왔지만, 그렇게 42년이 흐르는 동안 수신료는 단 한 푼도 오르지 않았다. 대한민국 공영방송 수신료는 NHK나 BBC 등 선진외국의 공영방송에 비해서도 터무니없이 낮다.


  신문과 방송을 통틀어 오늘날 언론환경이 극한의 정파성과 극도의 상업주의로 치닫는 기저에는 공익과 공공을 위한 공론장이 사라진 데 큰 원인이 있다. 그나마 전체 언론의 1%도 안 되는 공영방송이 공론장을 지키며 언론환경의 건강성을 담보해왔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제 정부와 정치권은 정파와 이념의 차이를 넘어, 공론장을 재건하고 강화하기 위해 공영방송의 역할과 재원인 수신료 인상과 배분, 투명한 회계처리 방안, 사회적 감시시스템 도입 등에 대해 발본적인 논의를 해야 할 때다. 건강한 공론장은 공짜로 조성되는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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